소식지 3420124                                                   홍승의 신부 드림

 

성 주간 난동

 

부활절 전 한 주간을 이곳에선 세마나 산타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돌아가심을 기억하는 말 그대로 거룩한 주간이란 뜻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말을 접어두고라도 진실한 한 사내가 지닌 사랑을 바라보면서 목숨을 내어놓고 사랑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흔들림과 아픔 앞에서 숙연하게 그리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 사랑 하겠다는 맹서를 가슴에 놓아야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철 없는 아이들과 성질 급한 신부가 함께 사는 저희 집에선 이런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성주간에는 나라 전체가 휴일이기 때문에 직원들과 보모들이 모두 휴가를 간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전쟁터 분위기인데 거기에다 숙연한 성주간 전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아예 난동을 예견할 수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래도 성 금요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만큼은 분위기를 잡아보겠다고 덤빈 제 불찰에서 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세 미만이 태반인 아이들을 데리고 가장 숙연해야 하는 수난예절을 진행할 수 없을 거라고 미리 판단해서 칠세 이상의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만들어서 읍내에 있는 성당으로 보내고 혼자 차분하게 예절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차비와 물을 사먹을 수 있을 만큼의 용돈을 주어서 외출을 내보냈습니다. 대신 오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니까 예수님 생각해서 간식과 음악은 절제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차비까지 아껴가며 읍내까지 걸어 나가서 성당은 안가고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들어오다가 저한테 들켜버렸습니다. 유일하게 한 그룹이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오길래 물었더니 완벽하게 다 사먹고 오는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서운하고 짜증이 나서 아이들 모두를 모아놓고 올 한 해 외출 시간을 다시 주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성질을 부려댔습니다. 제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거죠. 엉뚱한 이유로 인해 저녁에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성질 나쁜 신부가 사는 집이라서 난동은 언제든지 일어나지만 또 순진하고 맑은 아이들이 언제든 저를 이겨내기 때문에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일곱 살짜리 한 아이가 제 방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먹다 남은 반쪽자리 과자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죄송하다고 다시 안 그러겠다고 숨겨놓았던 과자를 주고 가더라고요. 그 순간 정말 제가 나쁜 놈 됐다는 생각이 들고 이번에도 또 아이들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인정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라서 아침 일찍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다시 즐겁게 부활절을 맞이하자고 자존심 버리고 여우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함께 부활 밤 미사를 마치고 약속한대로 밤새 축제를 벌이기 위해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커다란 케이크를 나눠줄 때입니다. 한 녀석이 기분이 업이 되어서 고자질을 하는 것입니다. 금요일 날 밖에서 다 사먹고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은 그룹이 사실은 닭고기를 사가지고 몰래 숨겼다가 저녁때 먹었다는 것입니다. 아 순간, 겉으로 죄인인양 하면서 뒤에서 저를 속이고 희희덕거리면서 닭고기를 먹었을 녀석들의 기름진 얼굴이 그려지는 겁니다. 주범들에게 정말이냐고 바로 물어보았습니다. 축제분위기라서 안심하고 있던 녀석들은 의외로 아주 솔직하게 인정하더라고요. 그 밤 축제는 케이크만 먹는 걸로 바로 끝났습니다. 제가 벌인 이차 난동입니다.

 

 

성질 내고 나서 맞이하는 부활절 아침이라서 착잡하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닐 수 있는데 뭐 그렇게 거룩한 척하느냐고 이 기쁜 날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참을성 없이 성질 부린 게 후회도 되긴 하는데 그렇다고 두 번씩이나 성질을 냈으니 이걸 어떻게 수습하나 고민되었습니다. 난감할 때는 정공법이 최선이겠거니 하고 바로 주범 자들을 불러놓고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다 잊어버리겠다고 조금은 가장의 체면을 세우면서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제야 얼어붙었던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들 울음을 보니 역시 이번에도 제가 또 나쁜 놈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가르치면 됐을 것을 성질을 내서 난동을 피우는 아버지를 둔 불쌍한 녀석들을 안고서 거룩하다는 건 숙연해서도 차분해서도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되새기면서 맞이해야 했던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