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3520129                                                           홍승의 신부 드림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 지역 중에 하나인 이사발 주 리오둘세 지역을 두 달에 한 번씩 두 주동안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역조사를 위해선 이 곳 지역에서 사용되는 부족 언어 습득이 먼저 필요해서 부족 마을에 머무르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 조사 기록중 일부입니다.

 

2012 7 6일 금

에스메랄다 마을 안에 머물 수 있는 방을 교리교사인 이스라엘에게 부탁했는데 마침 방이 하나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옮겼다. 송판 벽에 함석지붕이라서 상당히 덥기는 하겠지만 사람들과 마주치고 어울리기 위해서 마을 안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맞을 듯 싶었다.

저녁엔 배로 40분 떨어진 케취어 부족 브리사스 마을에서 미사를 드렸다. 450명 정도가 사는 마을인데 신자는 한 60명 정도 되는 듯하다. 모랄레스 지역 신부가 두 달에 한 번 정도 미사를 드려주었다는데 사정이 있어서 요즘은 미사가 없는 상태라고 아쉬운 대로 근처에 신부가 왔다니까 케취어를 못해도 미사만 해달라고 초대를 한 것이다. 그런데 미사 내내 당황스럽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아예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쳐다보고만 있고 아이들은 성당 중앙 복도에서 대놓고 놀이를 시작했다. 그 아이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차피 내가 하는 말을 모를 텐데 마주치면 나만 민망하지. 혼자 중얼대면서 서둘러 미사를 마쳤다. 다음 주 토요일까지 미사경본이라도 다 익혀서 케취어로 미사드릴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무안한 마음에 무리한 약속을 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무리함이 사랑하는 일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일 게다. 하는 데까지 부딪혀 보는 거지 뭐

미사 후에 공동체 회장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촛불을 켜고 식탁을 차려놓았다. 전기도 없는 대나무 엮는 벽에 흙바닥 집이다. 그런데 식사하기 전에 사람들이 갑자기 줄지어서 밖으로 나가기에 엉거주춤 따라 나갔더니 그 어두운 데서 다들 밥 먹기 전에 손을 닦았다. , 이 위생개념을 뭐라 해석할거나… 가난하면 위생이 엉망이고 청결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하나의 선입견인가? 언젠가 시티에서 치과의사로 부터 이사발 지역 원주민들이 과테말라에서 개인위생 상태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심해야겠다. 원래 씻기 싫어하는 내가 혹시 실수할 수 있겠다.

다음 주나 다음 달에 전기가 들어온다고 다들 들떠있다. 다행이다. 다만 전기만 들어오고 전기와 함께 세상의 마음은 들어오지 않을 수 있을까? 쉽지 않겠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려니까 또 그 놈의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지붕 없는 야외 샤워장인데 비 맞으면서 씻는 느낌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7 7일 토

한 낮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워서 그냥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게 상책이다. 침대도 뜨끈뜨끈해서 누울 수도 없고 옷을 다 벗고 있자니 문 밖에 사람들이 있고 그냥 의자에 앉아서 헉헉대고 있었다. 사우나 좋아했던 것 후회하고 있다. 하느님은 꼭 상황과 때를 못 맞춰서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인 줄 잘 알고 있다.


7 8일 주일

마음에서 넘어야 첫 걸림돌은 화려함 또는 성취에 대한 욕망일거다. 작은 성취라 할지라도 그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는 자기 확인과 자기 드러냄에 대한 욕망 말이다. 번째 걸림돌은 불편함에 대한 몸의 저항 혹은 거부반응이다. 수없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서 편안함의 욕망은 효율성과 합리성이란 논리를 내세워 저항 할 때가 많다. 여하튼 이 두 걸림돌에서 완전하게 헤어나지 못하고 반쯤 마음을 걸쳐두고 있으면 무의미라는 세 번째 걸림돌과 항상 대면하게 된다. 세상 어디서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거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낮추어 놓기만 하면 의미는 어디서든 무엇이든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시간을 버리고 있는 듯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인 양 여겨지는 상태이다. 분명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불편함을 거부하는 편안함의 욕망이 함께 빗어내서 이 자리를 도망치고 싶어 하는 심리 상태일 것이다. 사실 조금만 마음을 펼쳐놓고 보면 이 걸림돌이 얼마나 사치스런 변명인가! 그런데도 꼭 한 번쯤은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부족 언어를 공부할 여건도 되지 않는데 이렇게 마을에 머물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세 번째 걸림돌을 넘어서야 하는 순간인가보다. 이런 걸림돌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는 것을 보니 내 몸과 마음이 이 곳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몸이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도망칠 핑계를 찾고 있으니 좀 더 마음 단속해야겠다.

읍내에서 물 한 통과 모기약,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주인집이 부엌까지 열쇠로 잠겨놓고 외출을 했다. 집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빵을 사가지고 왔는데 고기보다 더 질려서 결국 점심을 포기했다. 보통 때는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일텐데 꼭 마음이 산란스러울 때 밥 한 끼 굶는 일이 벌어지면 짜증이 나고만다.  누군가에게 ‘나 이런 고민 하고 있으니 나한테 좀 잘해’라고 떠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아무리 봐도 뭐 잘못 한 사람도 없고, 그냥 쪼잔해서 그렇다. 인정하고나니 웃음이 난다.


7 9일 월

에밀리오와 미나네 집을 방문했다. 가족들이 모두 대형 체인지 레스토랑인 “홉” 의 사장 별장에 관리자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집도 별장 별채를 사용하고 있다. 점심 초대를 받아갔는데 왠지 드는 이 어색한 기분이란…. 주인집이 2주에 한 번씩 와서 별장을 사용해서 평일엔 주인이 없다곤 해도 결국 남의 집이다. 남의 집 메이드의 초대로 와 있는 것이니 마음이 변치 않았다. 색다른 경험이다. 신부로 살면서 초대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의당 주인들의 초대를 받아왔지 일꾼에게 초대 받아서 간 집이라니…. 멋진 별장보다 이 사람들 마음이 애틋하고 이 어색한 내 자리가 옹색하다. 아직 내 삶의 자존심이 너무 높다.


7 10일 화

저녁엔 배편으로 치밀리야 마을을 방문했다. 30가구 130명 정도가 산다는데 이 정도 인원이면 할아버지까지만 올라가도 한 두 가계 정도일거다. 전형적인 케취족 작은 마을이지만 다른 곳보다 생기가 있었고 전기와 TV가 있어서인지 스페인어 이해력도 꽤 높은 편이었다. 미사 전에 마을 최고령 할아버지가 향을 들고 와서 내 주위를 빙빙 돌고 나더니 이제 성당으로 들어가도 된단다. 이방인 신부 몸에 붙은 잡스러운 것들을 떼어주는가 보다.

잇몸이 계속 아파서 항생제를 사러가려고 했는데 읍내까지 가는 배편이 없어서 읍내에 나가있는 이스라엘에게 전화로 부탁을 했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단다. ‘치사한 놈, 자기 부인이 아팠어봐라 그걸 잊어먹나…’ 하긴 일주일 만난 신부가 자기 부인만큼 소중하리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런 부탁하는 내가 이스라엘 입장에선 귀찮기도 하겠다. 내일 잠시 읍내 약국을 다녀와야겠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아플 때 어떡하지? 다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7 12일 목

미사 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다가오고 싶어서 주변을 맴도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밤길을 함께 걸었다. 성당에서 선풍기 한대를 얻어 왔는데 정말 행복하다.


7 14일 토

저녁 때 브리사스 마을에서 약속한 케취어 첫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에 내 발음이 어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주 솔직하게, 인정머리 없이 앞으로 많이 연습해야겠다고 알려주었다. 사람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하고 이렇게 친구가 되어가는 것일 게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따뜻하게 드러내는 자리에서만 친구가 되겠지. 아마 오늘저녁 마을 사람들끼리 내 발음을 흉내 내면서 키득거릴거다. 그리고 또 보고 싶어 하겠지. 사람들이 이제 또 언제 올 거냐고 묻는다. 9월 중에 다시 올 거라고 약속을 했다.


7 15일 주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때 천사의 집으로 돌아왔다. 몇 마디 케취어로 인사를 나누니까 천사의 집에 있는 케취어 부족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도 천사의 집에서 스페인어 배우느냐고 고생들 많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