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37 201212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드림

 

성탄, 따뜻한 사람들

 

뽀요 깜뻬로( 켄터키 치킨과 유사한 체인점) 가기. 시장 소풍가기. 안티구와(관광지 중에 하나) 방문하기. 영화관 가기. 동물원 놀러가기. 대서양 쪽에 사는 친구 집 찾아가기. 바닷가에서 하루 밤 자고오기. 이상 일곱 가지가 아이들이 골라놓은 성탄 전에 해보고 싶은 소원들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심사숙고해서 각자 두 개씩의 소원을 내어놓은 다음 비슷한 것끼리 모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일 년 내내 천사의 집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보니 모든 소원이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11월과 12, 방학인데도 돌아갈 곳 없이 집 안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호기를 부려 소원을 내보라고 한 것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습니다. 돈도 만만치 않게 들거니와 이 바쁜 12월에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간끌기를 한다고 잊어버릴 녀석들도 아니라서 일단 가장 쉬운 뽀요 깜뻬로 가기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시내까지만 나가면 되는 일이니까요. 튀긴 닭 집을 가는 게 소원인 녀석들이란 게 대략 7세 미만 아이들입니다. 집에서도 질리도록 먹는 닭이건만 꼭 밖에서 비싼 돈을 내고 먹어야하는 게 탐탁하진 않지만 그래도 소원이라니 꼬맹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뭔가 주눅 들어있는 아이들 기분 살려가면서 잘 먹고 나오는 데 저희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미리 계산을 하고 갔다고 하더군요. 처음 있는 일이라서 당황했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한테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따뜻해졌습니다.

 

두 번째 소원 들어주기는 시장 소풍이었습니다. 각자 15께잘(2)을 들고 시장에 나가서 자유롭게 쇼핑을 즐기는 거지요. 다른 친구들과 용돈을 연합해야만 다양한 먹을거리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 소원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묘하게도 소풍 가기 전 날 저금통 두 개가 들어왔습니다. 일 년 동안 동전을 모은 것이라고 후원자 가족들이 놓고 갔습니다. 저금통을 열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니 꼭 맞습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할 쪼잔 한 신부대신 아이들 소원은 하늘에서 들어주기로 했나봅니다.

 

아이들 소원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이런 우연은 계속되었습니다. 안티구와라는 관광지를 방문하러 가서는 연락 없이 만난 현지 신부님이 성대하게 점심과 간식을 마련해 주었고요. 산 너머 강 건너 이사발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아가는 이박 삼일 여행에서는 과테말라 아저씨 한 분이 아이들 숙소와 식사, 배편까지 마련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11월에 느닷없이 천사의 집을 찾아 온 젊은 친구들이 아이들에게 동물원가기와 바닷가에서 하룻밤 지내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실 저에게 제일 귀찮은 일이 바닷가 가는 일이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아무래도 걱정될 일도 많고 잔소리할 일도 많으니까요. 하룻밤이긴 해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고 질질 끌다가 은근슬쩍 넘겨버릴 마음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이들은 잔소리 많은 신부 쏙 빼고 자기들 원하는 것 다 들어주는 사람들과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마음 속 소원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소원은 3D 영화관가기입니다. 이미 한 분이 아이들 성탄 선물로 300불을 놓고 가셨습니다. 쓰고 남을 돈입니다. 돈 생각하고 시간 생각하느냐고 주저거리고 있는 신부를 이겨내고 아이들의 소박한 일곱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기막힌 우연들이 계속되면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 계속되면 그 모든 게 단순한 우연들이 아니라 세상에 따뜻한 사람들 덕분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돌아보니 이런 신기한 일들이 12월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일 년 내내 그러했지요. 일 년 내내 언제나 저희들 곁에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힘겨워도 작은 손길을 보내주시던 그 마음들로 살았습니다. 성탄, 아기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담긴 찬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신기하게, 저희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