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40 201307                            홍진우 베드로(청주교구 신학생/ 선교실습)

 

밀과 가라지 비유

 

이곳에서 생활한지 이제 겨우 네 달을 넘기고 있지만 제가 이곳 과테말라 천사의 집 아이들 안에서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모든 사람은 마음이란 텃밭 안에 밀과 가라지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 안에 밀만 자라고 있는 완전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가라지만 자라고 있는 온전히 몹쓸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천사의 집 아이들도 마음속에 고운 밀과 함께 껄끄러운 가라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거겠지요. 오히려 나이에 비해 험한 시간을 걸어온 아이들이다 보니 다른 또래들보다도 더 많은 가라지를 지니고 있을 거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이 껄끄러운 가라지들과 대면하고 부딪혀 사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이미 제 몫의 생활비를 다 쓴 아이가 학용품을 사려고 우겨대기에 몇 번 외상으로 팔아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와서 달라고 하고 주지 않으면 저를 나쁜 삼촌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신경질을 부리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속이 뒤집혔습니다. 신부님한테는 몰래 속이는 일을 못하면서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이라고 저를 무시하고 속이려 드는 것이 아무리 생각 없는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라 해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배신감이 극에 달했을 때는 아이들이 뒤에서 퍼뜨린 불쾌한 소문을 들었을 때입니다. 누구를 더 오래 안아주었느니, 누구를 더 많이 안아주었느니 하는 스킨쉽에 대한 소문이 도는 것을 알고 나선 몇 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젊은 신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얼마나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식의 소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지만, 저는 그 안에 숨어있는 몇몇 가라지들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 마음속의 가라지들을 뽑아내보려는 나름대로 많은 시도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마음속의 나쁜 가라지를 뽑아 버리겠다고 대드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아이들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마음도 함께 생겨버렸습니다. 뒤에서는 저를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저를 가지고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도 제 앞에서는 늘 해맑게 웃으며 안겨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대로 믿을 녀석이 정말 하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불신에 이어 아이들에 대한 판단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박한 아이들만을 상대하고 싶어 하고 큰 아이들 중에 영악하다 판단되는 아이들은 아예 피해 버리려는 습관이 생겨났습니다. 결국엔 무조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관계의 신뢰까지도 무너뜨리고 있었던 듯합니다. 섣불리 가라지를 뽑으려다 아이들 속에서 겨우 자라고 있을, 밀의 새순까지도 뽑아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보다 인생을 두 배는 넘게 산 어른이면서도, 눈에 보이는 아이들 허물 하나하나에 힘겨워하면서 아이들 속에는 뽑아버릴 것보다 지켜주어야 할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밀과 가라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저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가라지를 뽑아내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아내야한다는 의지의 관철보다는, 그러다 혹시 같이 뽑혀나갈지도 모를 연약한 밀에 대한 걱정과 배려가 묻어나는, ‘인내’를 요구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성경을 통해 본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불충실 그 자체였고, 그래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먼 이방인들의 땅에서 많은 시간 동안 유배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배반을 물마시듯 했던 당신 사람들을 위해 수천 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당신의 종들을 보내주셨던 하느님, 그러다 못해 결국 당신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내어준 것도 별로 없이, 그저 올바른 잣대만을 들이대며 그들을 판단하고 있는 제 모습을 부끄럽게 돌아보았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인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가라지가 온 밭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분명히 숨어 자라고 있을 한줌의 밀을 포기하지 않는 밭주인의 마음을 떠올립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아이들 속의 가라지 때문에 힘이 부칠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요란한 애정 행각보다는, 아이들이 전혀 몰라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향한 인내와 포기를 모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