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42 2013.12                                                  홍승의 가브리엘 신부 드림

 

반짝여서 아름다운.

(2013년 뉴저지 데마레스트 본당 대림 피정 강론 중 일부 발췌 정리)

 

 

몇 녀석이 성당에 마련해 놓은 대림절 초를 갉아먹었습니다. 초에서 좋은 향기가 나니까 기어코 입으로 맛을 확인한 것이지요. 그것도 색깔별로 맛을 보았습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두 녀석을 데려다 놓으니 서로 자기 이빨자국이 아니라고 우겨됩니다. 어이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이는 아이들에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 다른 세상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어쩌면 그 세상은 우리가 모를 수밖엔 없는 정도로 순수해서 다른 세상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 해 동안 가장 순수로 반짝였던 아이들 이야기를 남깁니다.

 

에피소드 하나

 

알리시아가 엄마를 찾았습니다. 어릴 적 고모 집에 자기를 맡겨놓고 사라진 엄마를 10년이 지나서 만났습니다. 그 사이에 알리시아에게는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소에게 풀을 먹일 땅이 필요한 고모네 가족들이 근처 큰 땅 주인에게 항상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 문제였습니다. 알리시아는 가족들의 묵계적인 방관 속에서 이 땅 주인에게 삼년동안이나 폭행을 당해왔습니다. 재판 날 제 등 뒤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모든 이야기를 하던 모습, 고모를 가리키면서 다시는 저 사람 보지 않게 해달라고 독하게 쏟아 붓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런 녀석이 결국 자기를 버리고 사라졌던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처음엔 어렴풋하지만 얼굴은 기억할 수 있다면서 온갖 복잡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자신이 겪은 그 아픔을 기억할수록 제일 먼저 자기를 버린 엄마를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우선 엄마와 함께 보름만 지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찾아간 녀석이 보름 뒤에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와 더 있겠다고요. 엄마가 아프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엉뚱하게 제가 화가 나버렸습니다. 뭔가 알리시아가 억울하단 느낌 때문이었나 봅니다.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가 아프다고 그 옆을 지키고 있을 이 아이가 너무 바보 같아서 화가 났나봅니다.

 

에피소드 둘

 

노엘리아는 11살 나이에 성병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항문에 생긴 성병이 뿌리가 깊어서 오랜 치료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천사의 집을 찾아오는 날이면 둘이서 항상 대판 싸우고 맙니다. 법정에서 새아버지가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해줄 것을 아이에게 종용하니까 아이가 큰소리를 내게 됐던 것입니다. 병원에 치료를 갈 때마다 순식간에 의자 뒤로 숨어서 파르르 떨고 있던 이 아이의 아픔을 엄마는 헤아릴 수 없었던 걸까요. 시간이 흐르고 새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나서 과자를 사들고 다시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노엘리아는 그런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엄마가 밉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을 못하다가 그냥 “엄마잖아” 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미쳤었다고 말하는 엄마를 너무 쉽게 받아주는 노엘리아가 바보 같았습니다. 전 아직도 노엘리아 엄마를 보면 약이 오르는데도 말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

 

자기를 버린 엄마를 그리 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세상의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던 거지요. 한동안은 그냥 모자랄 정도로 바보 같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아이들의 마음이 순수해서 그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수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과 맑음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힘일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 해도 자기는 한 순간도 엄마를 버린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버림받았지만 버리지 못한 것이지요. 아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순수라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 세상에선 사람을 버린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나봅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이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세상과 마음은 확실히 하늘나라를 닮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외면 받았지만 한 순간도 사람을 버리지 못해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 위에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고 짓밟혔지만 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을 겹쳐 봅니다. 그리 보니 성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도 분명 다른 세상에서 오신 분인게 확실합니다. 우리가 모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순수해서 다른 세상일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 오셨나 봅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우리들 세상에 오시는, 이미 와 있을 다른 세상을 축하드립니다.

 

 

후원회 소식

 

12월에 10일 동안 뉴저지 데마레스트 본당 대림 피정, 볼티모어 본당 대림 피정, 뉴저지 CLC대림 피정,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 후원회 미사, 워싱턴 본당 방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신 각 본당 신부님들과 후원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