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45 2014 09                          이재희 루도비꼬 (신학생.선교실습)

 

남자의 품격, 삼손의 비밀

 

희소성 원칙의 예외

천사의 집의 청일점’, 3번 집에는 14명의 남자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본래 천사의 집은 여자 아이들을 위해 지어졌지만, 이 아이들의 오빠 혹은 남동생이 함께 들어오면서 남자 아이들만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선 남자 아이들 집이지만 천사의 집에 사춘기 소녀들에겐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겠지요. 연하와 연상을 가리지 않고 ‘핑크 빛 열애설’이 적지 않게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거기에도 관계의 빈부격차가 있더라고요. 어떤 녀석은 아무 것도 안 하는데도 편지와 선물을 자기 침대 주위에 상장처럼 전시해 놓을 정도로 받는데 또 다른 녀석은 100여명의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찌 그리 한 통의 편지도 못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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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의 미달

올해 13살인 아오스딩은 3번집 아이들의 맏형입니다.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말투는 어눌한데다 사람들을 만날 때 부끄럼도 많이 탑니다. 거기다 항상 어둡고 엉성한 옷을 입고 다니는 ‘꺼벙이’ 스타일인지라, 평소 한창 외모와 스타일에 민감한 사춘기 여자 아이들에게 거의 투명인간입니다. 스타일은 그렇다 해도 뭔가 믿음직한 면이라도 보여줘야 할 텐데 나이에 맞지 않게 녀석의 취미란 게 뒷산에 자라는 산열매 따먹기, 도룡뇽 잡아 키우기, 아기 새가 있는 둥지 떼어오기 등 여자 아이들이 싫어할 법한 일만 합니다. 스타일도 안되고 어른스러움도 없으면 올바른 모범생 스타일로 밀어 부치면 좋으련만 이리 저리 시설을 떠돌면서 익힌 도벽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그것도 안 되는 아이입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해도 자상함이란 품격만 있으면 저희 집 여심을 얻을 확률이 아주 높아지는데 아오스딩은 이것도 잘 안됩니다. 집 안 동생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자상한 편인데도 꼭 여자 아이들과 마주하면 생각과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맙니다. 하루는 만만해 보이는 한 여자 아이에게 작정하고 작업을 한다는 게 그냥 난데없이 “나한테 뽀뽀해줘!”라고 돌직구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단칼에 차이고 소문은 온 집안에 쫙 퍼졌고요. 인생의 쓰라림을 곱씹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연애편지를 받을 때면, “난 별로 관심 없어!,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이 더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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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비밀

성서에 나오는 남자다운 남자, 삼손에게 주어진 힘의 원천은 머리카락에 있었다지요. 과테말라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삼손의 비밀은 닭 벼슬 머리입니다. 과테말라 남자 아이들 역시도 남자의 원천은 특별한 머리카락에 있다고 믿나 봅니다. ‘닭 벼슬 머리는 소위 ‘좀 논다는 아이들’의 핫 트렌드이지요. 수려한 외모의 필수조건인 동시에, 남자 아이들에게는 자존심이요 여심을 흔드는 매력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3번 집에서 닭 벼슬 머리만들기는 하루 중 아주 중요한 일과입니다. 매일 아침, 어린 아이부터 큰 아이까지 쪼르르 화장실로 몰려가서는 거울 앞에 빽빽이 모여 섭니다. 그리고는 다들 손에 물을 잔뜩 묻히더니, 한올 한올 정성껏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우지요. 머리 한가운데를 빳빳하고 뾰족하게 만들면 완성! 정말 그 모습이 정말 꼭 ‘닭 벼슬’ 같답니다. 장관이지요. 하루는 비 오는 날 몇몇 남자 아이들 머리 위에서 거품이 났습니다. 머리에 좀 더 힘을 준다고 물 대신 샴푸를 썼다는 것입니다. 암탉들의 세상에서 수탉의 위엄을 세워야 하는, 삼손의 힘을 갖게 되는 장엄한 작업인지라 뭐든 쓸 수 있는 건 다 써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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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기회

어느날, 아오스딩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봉사자들이 작전을 하나 세웠습니다. 바로 아오스딩에게 ‘닭 벼슬’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지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닭 벼슬 머리작업에서 아오스딩이 늘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녀석도 몇 번 시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머리를 할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머리를 해서 인기 있다고 여긴 게 아니라 인기가 있어야 그런 머리를 한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자기에 대해 자신감마저 잃어버린 거지요. 사람들에게 존중 받은 경험도 많이 없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돌보는 방법도 잘 모르는 녀석이니 속으로 혼자 상처 받으며 많이 슬퍼했을 것입니다. 결전의 때. 3번집 전체가 이발하는 날, 아오스딩의 동의 없이 녀석의 머리를 닭 벼슬로 이발했습니다. 이 녀석, 처음엔 당황하더니 이내 쑥스러움과 흡족한 표정이 교차되더군요. 반대로, 경쟁자인 조나탄과 호아우는 한창 여자관계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로 머리를 빡빡 깎였습니다. 좀 안되긴 했지만, 의도치 않게 아오스딩은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지요. 다른 암탉들의 사랑을 받을 ‘유아독존(唯我獨尊) 수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품격, 자기존중

그날 이후 놀랍게도 아오스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종종 거울 앞에서 바뀐 자신의 머리스타일을 보며 미소 짓는가 하면, 눈빛도 더 이상 어수룩하지 않고 또렷이 빛났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고요, 게다가 여자 아이들과 함께 농담하고 장난치는 이 녀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오스딩이 직접적으로 받은 도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단지 평소 자신이 원했지만 쑥스러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머리모양 하나 바뀌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녀석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자기뿐만 아니라 주위의 관계까지 움직이는 저 힘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자기 존중감’인 듯합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애정과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이지요. 이전에는 자기의 모습을 못났다고 여기면서 어두운 색의 옷으로 스스로를 감추려고 했다면, 이제는 자기 스스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과 그 모습을 나눌 수 있고 또 나누려 하나 봅니다. 꺼벙이 소심쟁이 아오스딩이 ‘닭 벼슬’을 통해 용() 됐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3번집 아이들은 어김없이 화장실로 향합니다. 머리가 잘렸던 원조 닭대가리 조나탄도, 호아우도, 그리고 신흥 주자 아오스딩도 갑니다. 그러면 저는 이 녀석들이 공부는 안하고 외모에 신경 쓴다고 핀잔을 주면서 솟아오른 머리를 푹푹 내리누르는데, 뒤로 돌아서서는 몰래 아오스딩의 머리만 뾰족 세워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오스딩, 너 멋진 녀석인 거 알지? 나도 많은 사람들도 너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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