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46 2014 10                                                성현지 스콜라스티카 (봉사자)

 

 

펠리파, 함께 있어도 보지 못했던 아이

 

   천사의 집 생활을 시작하던 처음 한 달 동안은 12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10명의 이름을 외우기도 벅찼었는데 8개월이란 시간 동안 아이들과 매일 만나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젠 제법 많은 아이들의 이름뿐 아니라 저마다 깊은 사정까지 알게 되었다고 뿌듯하게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속에 섞여 눈에 잘 띄지 않았던 한 아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이들이란 게 이래저래 잘 드러나 있는 아이들뿐이었단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아주 특이한 성향이나 특이행동을 보이는 아이, 이모들에게 버릇없이 굴어서 혼나는 아이 등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말썽쟁이 아이들이나, 무엇이든 척척 잘해내서 모두의 칭찬을 받는 아이, 누가 봐도 미소 짓게 할 만큼 귀여운 예쁜 아이들이 항상 봉사자들의 대화 가운데 오르내리는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중과 칭찬 사이를 오고 가며 톡톡 튀는 아이들뿐 아니라 그 아이들 뒤편에는 그리 사랑스럽지도, 말썽쟁이도 아니어서 눈에 띄지도 않고,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주변을 맴도는 평범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SAM_1874.JPG SAM_8094.JPG



   펠리파, 항상 코맹맹이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라는 거 외에는 나에게나 다른 봉사자들의 입에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 아이이다. 특별히 예쁘지 않지만 밉지도 않은, 특별히 나이가 많거나 어리지도 않은,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지도 않은, 싸움꾼이거나 말썽쟁이이지도 않지만 모범생이지도 않은, 다른 시설에서 오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천사의 집으로 이전해 온 그룹 중에 한 명이라는 어중간한 자리까지 더해져서 평범함 속에 묻혀 있던 아이였다. 이 평범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게 된 계기는 아주 작은 사건에서였다. 3주전, 펠리파는 친구들과 산책하다가 쓰레기봉투에서 버려진 아기 분유 통을 찾았다. 그리고 분유 통 찌꺼기를 먹는 것을 또 다른 친구가 보고서는 펠리파가 아기우유를 훔쳤다며 선생님들에게 알리면서 터진 사건이었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이 일이 커진 것도 나에게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그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상황은 아무도 그 아이의 진실을 들으려 하지않고 거짓말을 추적하겠다고 몰아가는 어른들의 태도였다.

 

네가 이거 먹었지. 왜 그랬어?”

펠리파, 네가 먹었어 안 먹었어?”

상한우유 먹으면 배가 아파져서 그래, 먹었어 안 먹었어?”


SAM_6872.JPG


   말의 억양이나 뉘앙스는 달랐지만 모두가 거짓말을 고백하라는 한가지 말을 하고 있었다. 훔쳤다는 것을 고백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쓰레기를 주워먹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라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10살짜리 아이를 앞에두고 심판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나에겐 상한 우유를 주워먹어서 배탈이 날것을 걱정하는 태도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현지선생님들의 모습에 화가나서 그들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훔친 것이 아니라 쓰레기봉투에서 주워 먹었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주눅이 든 펠리파가 끝까지 슬픔에 찬 얼굴로 너무도 태연하게 자신은 먹지 않았다고 우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별 일 아닌 것에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때 내가 느끼게 된 것은 이 아이는 자신의 편을 들어줄 어른뿐 아니라 친구나 형제 자매 없이 이곳에서 철저히 혼자인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펠리파는 괜한 주눅이 들면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그 속에서 끝까지 혼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자그마한 사건이 있던 그날부터 거짓말 한 것에 대한 벌이라는 핑계로 일주일 동안 매일 단둘이 저녁시간을 갖기로했다. 아이와 앉아 이런 저런 일상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아이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부모 없이 삼촌들과 함께 살면서 많이 맞고 자랐다는 것, 먹을 것도 주지 않은 채로 방치된 상황에서 동네 사람이 신고해서 어떤 보호시설 들어가게 됐다가 올 해 천사의 집에 오게 됐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또 원장 선생님을 통해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0살로서는 보여지기 힘든 성적행동과 언행으로 심리 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까지 비로서 알게 되었다. 맙소사, 내가 이렇게나 한 아이에 대해 무지하고 있었다니!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도 충격이었다. 평범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주지 못한 아이에 대한 나의 책임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조차 특별하고 유별나지 않으면 소외를 받는 아이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이 곳을 찾아온 나조차 예쁜 행동을 하는 아이들, 항상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 휩싸여 소외받고있는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SAM_6480.JPG



   나는 지금 펠리파가 살고 있는 2번집을 담당하는 한국인 이모이다. 그래서 지금은 펠리파와 함께 세끼 밥을 먹고 만나면 안아주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고 입술이 부르트면 약을 발라주고 책 읽기를 도와주며 잘못할 땐 혼을 내며 잠자기 전에 침대로 안아 올려 이불을 덮어주며 함께 하루를 마무리 하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을 아이와 나누고있다. 그리고 이 소박한 일상이 이 아이와 내가 나눈 추억들의 전부이다. 함께 나눈 특별한 추억이나, 큰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소소한 사건이 있던 그날 이후부터 이 아이는 내게 막내 동생의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다. 함께 있어도 함께 해주지 못했던 아이, 펠리파라는 이름은 내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을 것이다.

 

이모, 아이들 틈에서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근데 잊지 말아요. 나와 같은 친구들이 지금 이모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요. 평범해서 이모가 보려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친구들이에요. 혼자서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야 하는 친구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