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48201508월                            민상천 대건안드레아 (전년도 실습 신학생)

 

‘0’‘1’ (없음과 있음)

 

천사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10개월의 시간도, 벌써 반년 전의 꿈만 같은 추억이 되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개구쟁이 천사들의 그 장난기 어린 표정들이 눈에 선합니다. 때로는 말을 지지리도 안 들어서 속상했던 적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아이들의 순수함에 그 속상함마저도 눈 녹듯 사그라지곤 했지요. 그 순수함으로 인해 발생했던 웃지 못 할 크고 작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천사의 집 아이들의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씨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지난해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학교를 가지 않아 자칫 무료함을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천사의 집 식구들은 알찬 방학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두 달간의 방학기간동안 지루하다라는 말을 할 여유가 없었죠. 오전에는 수준별 수학수업과 성탄공연 준비를,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그 중 단연 압권은 수학수업이었습니다. 미리 시험을 통해 개인의 수준에 맞게 4-5개의 반을 만들어 숫자를 쓰는 기초반부터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하는 고급반까지 편성을 하였습니다. 각 반별로 한국 봉사자와, 현지인 선생님이 담당을 하였는데, 저는 가장 낮은 단계인 기초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두 달 동안 아이들과 어떠한 숫자싸움을 하게 될지 말입니다.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우리 반이었습니다. 대부분 10살 미만이었지만, 15살 맏언니도 한 명 있었죠. 첫 번째 시간에,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0부터 10까지를 쓸 줄 모른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던 저의 경솔함에, 아직도 사랑의 기준이 아이들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달력이나 TV나 신문 등을 통해 숫자를 접하곤 했던 한국에서의 어릴 적 모습을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대입시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아직 부족한 아이도 있었고, 수는 알지만 그걸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투른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9살 남자아이 Obdulio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Obdulio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친구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질문을 하거나 무언가를 요구 했다하면 일단 배시시 웃으며 몰라’, ‘못 해가 자동반사로 나오는 친구였죠. 0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1,2,3,4하고 잘 가다가도 갑자기 9가 나오고, 7 다음에 3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숫자를 쓰는 것은 더욱 힘들었죠. 숫자를 써보자고 준 연필이 초콜릿 색깔이라 맛있어 보였는지, 자꾸 입에 가져가곤 하는 바람에 연필을 빼앗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Obdulio를 보면서 황당함과 귀여움에, 저 역시 웃음을 짓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대로 잘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일단은 숫자를 그려보기로했습니다. 숫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0은 동그라미, 1은 직선, 2는 제법 어려운 곡선과 직선, 3은 곡선과 곡선, 뭐 이런 식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흥미를 보이던 Obdulio였지만, 반복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재미가 없었는지, 0은 찌그러졌고 1은 이리저리 삐뚤거렸습니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낯선 Obdulio가 그나마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수업 후에 주는 간식의 힘이 컸죠. 한 번은 너무 집중을 못하고 다른 친구들의 공부까지 방해하는 Obdulio에게, 벌로 간식을 주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간식을 먹는데, 혼자 간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만큼 교육에 효과적인 방법도 없지만, 그건 너무 치사한 거 같아서 뒤늦게 불러 간식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죠. “Obdulio. 아까는 간식이 없었으니까 0이고, 지금은 간식을 하나 받았으니까 1이야.” 사실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Obdulio의 시선은 간식으로 받은 빵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말이죠.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일 0부터 10까지를 읽고, 쓰고, 익히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지루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99까지 읽고 쓰는 아이도 있었고, 여전히 숫자를 그리는데 만족해야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얼마나 반복을 했는지 제가 가리키는 순서대로 숫자를 외는 것이 아니라 그냥 0부터 10까지를 노래처럼 흥얼거리는 아이도 있었지요. 그리고 Obdulio‘0’‘1’을 자유로이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들인 시간에 비해서 너무나 약소한 결과라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기뻤습니다. 비록 겨우 2개의 숫자이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알았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는 Obdulio의 모습을 보면서, ‘0’‘1’의 수를 통해서 없음있음의 개념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면서, 무엇보다 적게나마 이러한 배움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말이죠.

 

이제 01을 쓸 수 있게 된 Obdulio의 다음 목표는 ‘2’입니다. 신부님께 Obdulio의 소식을 말씀 드렸더니, 신부님께서 2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212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는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2나눔을 상징합니다. Obdulio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 대부분에게 나눔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 몫으로 주어진 과자를 친구와 나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의 나눔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우리 아이들도 그 나눔의 정신에 동참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받는 것뿐만 아니라 준다는 것의 기쁨 역시 누리며 참된 의미의 가치 있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기도와 관심 역시 나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랑의 나눔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나눔임을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