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집 소식지 30호                                                         홍승의가브리엘신부드림

 

 

상처 속에서도 빛나는 아이들의 웃음들

 

 

아이들이 주는 웃음들

 

하루 온 종일 시끄럽던 80명의 꼬맹이 녀석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봉사자들이 침대를 돌아보면서 실갱이를 합니다.

“발 내놔”

“씻었다니까요. 맡아봐요”

“씻긴 뭘 씻어. 흥흥 냄새가 나잖아”

들판이나 빈민지역에서 살던 아이들이 천사의 집에 들어와서 배워야 하는 생활이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살아온 자리와 다른 것이 한 둘이 아니니까요. 신발을 신는 일 하나만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매일 맨발로 뛰어다니는 녀석들이라서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달고 살게 만들고 세면장의 칫솔은 아무리 나눠줘도 왜 그리 비어있는지 모르겠고 아무리 씻으라고 해도 옷을 입은 채로 물만 적시고 나오기 일쑤이고 강아지 밥을 주라고 하면 걸어가면서 자기들끼리 즐겁게 나눠먹습니다. 오죽하면 간식창고를 몰래 들어간 녀석이 그 많은 간식들을 내버려두고 강아지 사료를 먹고 있다가 들켜서 다들 기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항상 잔소리를 달고 가르쳐야하는 일들이겠지만 엉뚱하기 만한 아이들 때문에 항상 웃음을 달고 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천사의 집에서 제일 어색한 것은 수세식 화장실입니다. 대부분 산 속이나 들판에서 볼 일을 보던 아이들이 갇힌 공간에 혼자 들어가서 이상하게 생기 물건 위에 앉아 있는 일이란 게 이상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가 봅니다. 화장실을 가지 않고 꾹 참고 있다가 아무도 없는 시간에 복도나 방 한구석에 볼 일을 보고나선 시치미를 뚝 떼고 있기 일쑤입니다. 처음엔 경비견으로 키우는 강아지들이 복도에다 볼 일을 봤다고 여겼는데 어느 날 복도 기둥 뒤에서 대낮에 볼 일을 보고 있던 한 녀석이 딱 걸려들었습니다. 멀리서 “야아?” 하고 소리치면서 달려가는 데 볼 일 보던 녀석이 어찌나 놀랐던지 똥이 그대로 달려있는데도 반쯤 올린 바지를 엉거주춤 부여잡고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혼내야겠다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그 모습에 주저앉아 웃어버렸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아이들을 수세식 변기에 겨우 앉혀놓게 되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휴지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매일 아이들이 목욕을 하는데도 이상한 냄새가 가시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대답 대신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방법은 단 한가지라서 직접 책상 위에 올라가 휴지를 들고 시범을 보였더니 처음엔 진지하게 배우는 건지 곤란하다고 여기는 건지 분간하기 힘든 천진난만한 얼굴로 제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니만 결국 엉거주춤한 제 모양새를 보고 모두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살다보면 배울 일인데 너무 호들갑을 떨었었나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실컷 웃었습니다.

 

작은 일들에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웃고 나면 힘겨웠던 일이나 흔들리던 마음, 괜스레 아이들에게 서운했던 마음들까지도 별 일 아니었다 싶어집니다. 천사의 집이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란 그저 하루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함께 웃는 일입니다. 세상 안에서는 작은 일이겠지만 저희들에겐 제일 소중한 일입니다.

 

아이들 속에 감춰진 눈물

 

천사의 집 아이들 웃음이 다른 어느 아이들 웃음보다 맑고 밝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처 속에서 빛나는 웃음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천사의 집 아이들 가슴 뒤편을 들춰보면 저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집이 하는 또 다른 일은 함께 울어야하는 일입니다. 아이들 속에 감춰진 이 눈물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고 아이들 곁을 떠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처 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일이 천사의 집에 모든 것입니다.

 

가난이라는 눈물

과테말라에서 처음 만난 상처는 가난이라는 그늘이었습니다. 오넬다는 동네 사람들이 마련해 준 한 달에 8불짜리 월세 집에 엄마와 함께 생활하다가 동네 사람의 소개로 저희 집에 들어오게 된 아이입니다. 처음에 워낙 모난 행동으로 천사의 집 생활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다음 아이를 데리고 먼 시골집을 찾아갔었습니다. 몇 시간 산을 올라가서 오넬다의 엄마을 만났는데 오넬다를 보자마자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쏘아버리더라고요.

“너 줄 음식 없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삶에 지쳐서 건조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넬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돌아서면서 소리 없이 눈물 딱 한 방울 흘렸습니다. 그리고 어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 뒤로 오넬다가 엄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만난 첫 아이의 눈물은 그렇게 가난이라는 그늘진 눈물이었습니다. 가난해도 행복하면 좋겠지만 가난이란 척박함은 상처라는 사실을 만났습니다.

 

길잃은 아이의 울음

알베르또와 로시오는 3살 7살 나이에 천사의 집에 들어온 어린 남매입니다. 누군가에 살해당한 아빠와 미국으로 불법입국을 한다고 떠나 소식 없는 엄마를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아이들을 어느 장기 밀매단 같은 곳에 팔려다가 경찰에 걸려서 도망쳐버린 할머니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해도 누나인 로시오는 나름대로 자신이 무슨 이유로 저희 집에 머물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간혹이나마 자신이 살던 집에 가고 싶다거나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이의 거취를 결정하는 법원 재판에서도 판사가 묻는 말에 천사의 집에서 살고 싶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나서 제 눈치를 보았습니다. 알베르또는 아직 어린 나이라서 눈물이 많습니다. 무슨 서운한 일이 있으면 죽어라고 누나 이름을 부르면서 울어 됩니다. 울면서 엄마나 아빠를 찾지 않고 “로시오”하고 우는 녀석이 안쓰럽습니다. 누나가 다가오면 둘이 꼭 끌어안고선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 어린 남매아이들 울음 속에서 세상 한 귀퉁이에 내몰려져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눈물을 만났습니다.

 

폭행당한 아이의 눈물.

열한살 노엘리아는 수줍음이 많아서 항상 뒤편에서 서성거리면서도 아이다운 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아이입니다. 웬만한 것에 싫은 내색을 잘 하지 않는 노엘리아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병원에 가는 일입니다. 치료를 계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항문에 있는 성병이 뿌리가 너무 깊어서 수술로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새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폭행을 당해온데서 생긴 병입니다. 예민한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병이라서 여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진찰할 시간이 되면 의자 밑으로 숨어서 몸을 바르르 떨고 있는 바람에 의사들을 당혹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이런 노엘리아가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은 엄마입니다.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법원에 고소를 당한 새아버지 편을 들고 있습니다. 면회를 한다고 가끔 찾아와서는 새아버지가 한 일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최면을 거는 수준으로 아이에게 진술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엔 심한 말다툼을 하다가 헤어지고 맙니다. 노엘리아는 잔잔한 미소 뒤에 쓸쓸한 흐느낌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 아이 속에서 힘없는 여자아이라서 당해야했던 상처 속에 고인 눈물을 만났습니다.

 

버림받은 아이의 눈물.

작년에 천사의 집에 들어온 알리시아는 당찬 구석이 있어서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사람들 앞에서 씩씩하게 떨지 않고 발표를 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서 탈입니다. 우울할 때는 누구도 기분을 풀어주기 쉽지 않을 정도로 깊게 가라앉아 버립니다. 3년 동안 당해온 성폭행이 감정기복의 원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폭행이란 사건보다도 알리시아에게 더 큰 상처는 가족들이 이를 알면서도 묵인과 동조를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알리시아의 보호자인 이모네 가족은 가해 남자의 땅에다가 소를 키우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소가 풀을 뜯어야하는 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상황을 묵인하고 어떤 경우엔 동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가족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부모 없는 여자조카를 거래하고 있었던 거지요. 알리시아에 대한 예비 재판이 천사의 집에서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알리시아는 재판이 열리는 자리에 들어서지 못하고 문 밖에서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진술이 필요한 상황이라서 재판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녀석을 겨우 달래서 입을 열게 했습니다.

“천사의 집에 살고 싶다고 했잖아. 여기서 살려면 예전에 있었던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려야만 해. 다 이야기하고 다 털어버리자. 응”

그 잔인한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제 등 뒤로 얼굴을 묻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싸늘한 눈빛으로 이모를 가리키면서 당황스런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저 여자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다시는”

폭행보다도 더 힘겨웠던 것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었나봅니다. 알리시아의 울음 안에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아이의 마음에 어떤 눈물이 있는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집 만들기

 

8년 전에 과테말라 한인 본당에 부임하면서 받게 된 생활비 천 불이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제에겐 부담스러운 급여라서 함께 나눌 곳을 찾다가 5년 전에 월세로 작은 집을 마련한 것이 천사의 집의 시작이었습니다. 남들에게 크게 손 벌리지 않고도 제 생활비정도면 작은 집에서 열 명 정도의 가난한 아이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시작한 집이었습니다. 집을 마련해 놓긴 했는데 낯선 땅에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서 무작정 시골 지역 시청들을 찾아가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들이나 시골에서 올라 온 허름한 아이들을 도시 한 가운데서라도 만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데려다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안 그래도 어린이 장기밀매가 극성을 피우던 시기라서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시청 담당직원과 함께 빈곤가정들을 방문하고 아이들의 영양상태와 교육에 대해서 어른들을 설득한 끝에 15명의 첫 아이들을 천사의 집에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웃음, 그리고 눈물과 만나게 된 첫 경험이었습니다.

 

15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작은 집이지만 개원을 하고나니 해가 갈수록 찾아오는 아이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법원과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버려지거나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이 계획 없이 들어오게 되면서 아이들이 좁은 집에서 바글거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쫓겨나는 일이 많아져서 사년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닌 끝에 결국에 새 집을 짓기로 결정하게 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땅도 구입하고 2년에 걸쳐서 2500평 규모로 아이들 150명이 살 집과 400명이 공부할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이리저리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집을 짓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건축회사 견적이 감당하기 곤란한 금액이라서 공사를 직영하게 되었습니다. 설계도 하나 달랑 들고 뛰어다니면서 인부들과는 수시로 싸워야 하고 자재를 사러 다니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도둑놈인 듯싶었고, 자재를 도둑맞고 나면 누구라도 붙잡고 우리 것 내놓으라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한 번은 도둑이 들어서 밤새 땅을 파서 묻어둔 전선들을 다 가지고 가버렸더라고요. 허탈하긴 했어도 밤새 노동이라도 해서 가져간 것이니 다른 강도들보다는 성실한 놈들이라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현장 책임자가 현장 앞길에서 강도들 총에 살해되었을 때입니다. 매달 500명이 총기로 죽어가는 곳이 과테말라이긴 하지만 그런 사고가 저희들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좋은 친구였고 천사의 집 건축을 함께 시작한 동료였습니다. 오랜 동안 노동한 사람의 순박함과 단순함이 몸 깊숙이 배어 항상 쑥스러운 맑은 웃음을 보여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주검 앞에서 아프도록 미안했습니다. 돈이라면 뭐든지 하는 조직들이나 그들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경찰들,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그저 누군가 잡아봐야 곧 풀려나와 복수를 할 테니 그냥 잊어야 한다고 여기는 유가족들이나 그 모든 것이 현실과 진실이 되어서 흘러가는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모두 싫어졌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자 발버둥거리는 저의 진실함이 조롱당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까지 여겨졌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이렇게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건 아마 아이들의 그 빛나는 웃음과 눈물 때문인가 봅니다. 이 아이들이 척박한 땅에서 홀로 울게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천사의 집 아이들은 밤하늘에 잔별들을 닮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상처 속에서도 빛나니 말입니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웃음과 울음이 세상 속에서 그처럼 밝게 빛났으면 좋겠습니다.